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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 모음/2-1. 조각글 모음

[조각글] 생떽쥐베리, 어린왕자 - 여우

by ZERO0201 2023. 1. 30.

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안녕?" 여우가 인사를 했다.
 "안녕!" 어린 왕자는 울음을 멈추고 공손히 대답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난 여기 있어. 사과나무 밑에." 조금 전에 들린 목소리였다.
 "넌 누구니? 참 예쁘게 생겼구나." 어린 왕자가 물었다.
 "난 여우야." 여우가 대답했다.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지금 너무 슬퍼." 어린 왕자가 제안을 했다.
 "난 너랑 놀 수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여우가 말했다.
 "아! 그래." 어린 왕자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하던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길들인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중략)
 
 왕자가 말했다. "나는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요즘은 쉽게 잊혀지고 있는 일이지만 그것 '인연을 맺는다'는 뜻이기도 해."
 "인연을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내 눈에 넌 수많은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어린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없어도 상관없고 너도 내가 없어도 상관없어. 너에게 난 수많은 여우 중에 하나일 뿐이지. 하지만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난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너도 나에게 마찬가지고…… ."
 "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한테 꽃이 하나 있는데…… .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것 같아…… ."
 "그럴 수도 있지. 지구에선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니까."
 "아니야, 난 지구에서의 일을 말하는게 아냐." 어린 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척 궁금해했다.
 "그럼 다른 별 이야기야?"
 "그래."
 "그 별에도 사냥꾼들이 있니?"
 "아니. 거긴 없어."
 "거 참 이상하군! 그럼 닭은?"
 "없어."
 "이 세상에 완벽한 데라고는 없군." 여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곧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생활은 무척 단조로워. 난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들은 닭들끼리,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모두 비슷하게 생겼어. 그래서 난 좀 지루해.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태양이 빛나는 것처럼 밝아질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의 발자국 소리와 네 발자국 소리를 구별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겠지만, 네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반가워서 뛰어나올 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푸른 밀밭 보이지? 난 빵은 안 먹어. 그래서 밀은 내게 소용없어. 밀밭은 내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지. 슬픈 일이야. 그런데 넌 금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 네가 날 길들인다면 네 금빛 머리카락은 더 밝게 빛날 거야. 그리고 난 금빛 밀을 보면서 널 생각하겠지. 그럼 난 밀밭을 일렁이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사랑하게 될거야…… ."
 여우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어린 왕자를 쳐다보았다.
 "제발……  날 길들여줘!" 여우가 애처롭게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어. 난 친구를 찾아야 해. 그리고 알아볼 것도 많고."
 "우린 우리가 길들여진다는 것만 알 수 있어."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가게에서 이미 만들어진 것만 사거든. 그런데 우정을 파는 가게는 없으니 사람들은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거야. 친구가 필요하다면 날 길들여줘…… ."
 "그럼 너를 길들이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누군가를 길들이려면 인내심이 강해야 해. 우선 나와 좀 떨어져서, 그래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으면 돼. 나는 널 슬쩍 쳐다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이라는 건 오해의 근원이 되니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넌 내 곁으로 조금씩 다가올 수 있을 거야…… ."
 다음날 어린 왕자는 다시 여우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것이 더 좋을 거야. 이를테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네가 더욱 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 되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언제 널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잖아. 그러니까 적당한 관례가 필요한 법이야…… ."
 "관례란 게 뭐지?" 왕자가 물었다.
 "이것 또한 쉽게 잊혀지고 있는 거야. 그건 오늘과 내일, 이 시간과 다음 시간을 구별하는 거야. 이를테면 나를 쫓는 사냥꾼들도 의시기이 있어. 사냥꾼들은 매주 목요일이 되면 마을의 처녀들과 춤을 춰. 그래서 목요일은 신나는 날이야. 그날은 포토밭까지 산책도 나가지. 그런데 사냥꾼들이 정해진 날 없이 마음대로 춤을 춘다면 하루하루가 모두 똑같아지잖아. 그리고 나에게는 휴가가 없어지고 말겠지."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였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정말 갈거야? 난 울고 말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네 탓이야. 난 네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야. 다만 네가 나에게 길들여주기를 바랐던 거지…… ."
 "맞아."
 "하지만 넌 울려고 하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널 길들였다고 해서, 네가 얻은 건 하나도 없어!"
 "아니야! 얻은게 있어 밑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여우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장미꽃을 한 번 더 보고 와. 그러면 넌 너의 꽃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와. 그러면 비밀 하나를 알려줄게."
 
(중략)
 
 왕자는 다시 여우를 만나러 갔다.
 "안녕!"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이제 내 비밀을 말해 줄게. 내 비밀은 별게 아냐.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여우가 말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 어린 왕자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되뇌었다.
 "네가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그 꽃에 바친 시간 때문이야."
 "네 꽃에 바친 시간 때문이라…… ." 이 말 역시 잊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그걸 잊어버리면 안 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넌 네 꽃에 책임이 있어…… ."
 "나는 내 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 어린 왕자는 이 말도 잊지 않으려고 되뇌었다.
 
- 생떽쥐베리, 어린왕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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